※2013년 12월 서코에 소량 판매했던 히무로 소설 돌발본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카가미 군이 죽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의 소년, 쿠로코 테츠야가 히무로 타츠야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아, 그랬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히무로가 담담하게 대답한다.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말하는 사람치곤, 그는 전혀 동요하고 있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그것도 한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의 사망소식을 들었는데도 그의 태도는 평소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차분했다. 카가미는 이제 없지만 이런 히무로의 행동을 그가 보게 된다면,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쿠로코 본인이 화가 난다. 저 태도는 적어도 죽은 사람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도, 일단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쿠로코가 질문한다.
"히무로 씨는 안 오시는 겁니까?"
"오다니, 어디를."
"카가미 군이 있는 병원 말입니다."
히무로의 대답은 매정하다.
"가지 않을거야. 어차피 죽은 사람에게 잘 보일 이유는 이제 없으니까."
죽은 사람은 필요 없다는 것인가. 이 말을 들으니 이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쿠로코도 히무로가 말하는 것처럼, 매몰차게 그에게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제 끊겠습니다. 실례가 많았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쿠로코는 전화를 끊었다. 뚜-뚜- 전화를 끊었을 때 나오는 익숙한 소리가 머리에서 왱왱거린다. 실제로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 소리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같다. 계속 뇌 내에서 빙글빙글, 작아졌다가 커졌다가. 어지럽다. 이건 위험 경보다.
카가미 타이가가 죽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도 와 닿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히무로 타츠야 본인이 바로 그 죽음의 산 증인이었다. 당시 시각은,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저녁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였던 것 같다. 히무로는 카가미와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먼 거리에서 그를 발견했었다. 반대편 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오고 있는 카가미를 발견한 히무로는, 어차피 이대로 가면 만날 것 같은데, 무시하고 그냥 가야할까, 가서 인사를 해야 할까 잠깐 멈춰 서서 생각했다. 고민하던 순간에 카가미가 빠른 속도로 돌진하던 트럭에 부딪혀 날아가 버렸다. 신호등은 분명히 초록 불이었는데. 엄연한 차량 측의 과실이다. 카가미는 정확히 말하자면 트럭에 부딪혀 날아간 것이 아니라 날아온 것이었다. 그가 원래 있었던 곳에서부터 히무로가 서 있는 반대편 도로의 앞까지. 육안으로는 어디를 다친 건지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피는 분명히 나고 있었다. 튕겨 날아오듯이 했으니, 아마 몸 어딘가가 부러진 것이 아닐까. 잉크병이 엎어진 것처럼 붉은 액체가 그의 몸과 도로에 천천히 퍼지고 있다. 쓰러진 카가미의 몸은 마치 관절이 고장난 인형 같았다. 그런 카가미를 보고 히무로에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기쁘다'는 이름의 환희였다.
사고의 최초 신고자는 히무로로, 그는 전화에서도 그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정말로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정신 상태는 안정되어보였다. 신고 전화에서의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가 있는 곳의 주소와 지금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상황 진술을 위해 경찰서에 갔을 때도 히무로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상태로 사고를 봐서 정신이 없으니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태도는 도무지 지인이 눈앞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을 본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사고를 당해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경찰은 히무로를 그냥 보내주었다. 나중에 사고 상황에 대한 설명을 받기 위해 다시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몇 시간 후, 카가미의 친구 중에선 가장 먼저 카가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받은 쿠로코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히무로가 카가미를 그 상황에 만나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근처의 대학에 입학하고 도쿄에서 살게 되었다.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보니 이곳까지 이르렀다. 사실은 도쿄로 이사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는 카가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때는 이사를 간다는 결정밖에 내릴 수가 없었다. 사실 히무로 타츠야는 예전부터 카가미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색하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문제였다. 그는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카가미가 그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지금까지 그것이 이어져 왔다. 히무로는 그의 앞에서는 항상 상냥한 형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솔직히 그것도 한계였다.
미국에서 처음 만나 농구를 가르쳐주고 그것으로 친해졌다. 하지만 히무로는 금세 깨닫고 말았다. 이 녀석에게 재능으로는 이길 수 없다. 가르쳐준 것은 자신인데. 결국엔 자신이 몇 수나 더 아래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질투심을 웃는 얼굴 아래에서 계속 삭혀두고 있었다. 카가미가 처음으로 히무로를 이기게 되었을 때도 카가미가 일부러 실수를 하여 그 둘의 승부를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렸을 때도 같았다. 삭혀둔 질투는 어느새 인가 증오로 변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카가미 앞에선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거짓으로 화해를 받아준 것이 아직도 그를 괴롭히던 때. 카가미가 그의 눈앞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카가미의 환영이 자꾸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웃고 있는 그의 환영이 히무로에게 '네가 날 죽인거야.'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카가미가 죽고 난 지 사흘 후. 장례식도 아마 지금쯤이면 끝났을 것이다. 카가미의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이제는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을까.
카가미가 죽고 난 사흘 동안 계속 꿈에서 그가 나타났다. 꿈의 내용은 별 것 없었다. 꿈속의 두 사람은 그저 한 없이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너는 사라졌는데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걸까. 분명히 잘라내 버린 부분이 아직까지 아프다.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히무로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이 했던 행동은 과연 최선의 행동이었을까. 후회 아닌 후회가 밀려온다. 카가미가 죽은 지 5일이 되는 날 그의 앞에 쿠로코가 나타났다. 어깨에는 커다란 가방까지 매고 있다. 여기는 어떻게 온 것일까. 집 주소 같은 걸 알려 준 적은 없는데. 그보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더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와 히무로는 그다지 큰 접점이 없었다. 그나마 카가미를 통해서 얕게나마 이어져 있었을 뿐 그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어울릴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면 지금 상황에선 한 가지밖에 생각 할 수 없다. 카가미와 관련된 일이겠지. 그런 일로 만나는 거라면 사양이다. 히무로는 쿠로코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도로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쿠로코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닫히려하는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까지 해서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대체 무엇인걸까.
쿠로코가 히무로의 눈을 응시하며 말한다.
"카가미 군의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더군요. 말은 그렇게 해도 와 주실 줄 알았는데."
"실망 시켜서 미안. 하지만, 별로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어."
"그렇습니까. 히무로 씨는 생각 외로 세상을 편하게 사는 편이었군요."
편하게 산다니, 이건 무슨 소리일까. 지금까지 그는, 계속 괴로워해왔다. 자신의 진심과 겉으로 표현하는 자신에 대한 괴리에. 지금껏 고통받아가며 힘겹게 살아왔는데. 뭔가 울컥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 움직이는 융통성을 보일 수가 없었다. 보통이라면, 싫어하는 감정을 꾹꾹 눌러서라도,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가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자연스럽게 그의 집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쿠로코가 말한다.
"히무로 씨와 카가미 군의 관계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히무로 씨는 카가미 군이 그렇게 싫습니까?"
히무로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쿠로코는 계속해서 준비된 말을 꺼낸다.
"카가미 군도, 사실은 히무로 씨의 고통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제가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 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을 해 주었으니까요. 물론 사고가 있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재능이란 것은 정말로 불공평합니다. 그것에 대한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재능이 없어서 절망 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죄는 없습니다. 히무로 씨가 잘못한 것도, 카가미 군이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운이 나빴던 것뿐이죠. 이런 말을 하기엔 매정하지만, 이것에 대한 문제는, 히무로 씨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문제이니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요."
언뜻 들어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히무로는 알 수 있었다. 그는 히무로에게 카가미를 이해해 줄 것을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카가미를 대신해서, 화해를 부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에게 남은 카가미에 대한 키워드는 질투와 증오다.
"난 한 번도 카가미 타이가를 용서한 적이 없어."
사실은 계속, 계속 미워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 녀석의 재능을 눈치 챘던 초등학생 때부터, 처음으로 지게 되었던 중학생 때, 그리고 고등학생 때 다시 만나 또 다시 질 때까지, 그리고 화해하자고 그가 먼저 히무로에게 다가왔던 그 순간까지도, 히무로는 카가미를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속에선 칼을 갈고 있었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어째서 자신은 재능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하였는지, 재능이 있는 저 녀석은 내가 먼저 권유하지 않았더라면 그 재능이라는 것이 있는 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 있는 주제에 그에게 살갑게 대하는 그 태도가 오히려 구역질났다. 그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건 오히려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후의 시합에서, 누가 봐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한 기회에서 일부러 실수를 하여 히무로를 봐주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자존심이 다시 산산조각이 나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전부 잊어버리고 싶었다. 저주스러웠다.
매일매일 카가미 타이가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누구에게 빌었는지는 본인도 알 수 없지만, 그 소원 아니 원망을 비는 것은 그에게 있어 지극히 익숙한 것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자신에 대한 소원이었다. 그만큼 농구를 잘하게 해달라는 소원이나 오늘은 그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소원이나. 그런 단순한 바람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의 다리가 망가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이라던가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려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원. 하지만 그것 중에서 이루어진 소원은 단 하나도 없었다. 히무로가 바라던 소원은 점점 더 추악하고, 음습한 무언가로 변해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찍었던 카가미와의 사진을 하나 씩 망가뜨려 가기 시작했던 것은 그 때부터였다. 빨간색과 검은색 펜으로 그의 얼굴을 지우고, 나중에는 그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찢어버리고, 나중에는 태워버렸다. 카가미를 생각하며 자해를 할 때도 있었다. 이 고통을 그녀석이 느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카가미와 싸웠던 그 날, 다음 시합에는 형제의 증표이자 추억의 상징을 걸자고 말했던 그 날 히무로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둘의 사진에서 카가미의 얼굴만을 도려냈다. 그 때의 사진은 항상 지니고 다니고 있다. 자신도 그게 무슨 의도 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죽으라고, 죽어버리라고 소리 지르며 미친 듯이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도 마음은 전혀 편안하지 못했다. 카가미 타이가가 죽게 해주세요. 내 눈앞에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제발. 그는 카가미 타이가라는 존재를 자신의 인생에서 잘라 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기뻤다.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바라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바라고 바라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기적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좀 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웃지 않으면 안 되지. 하하하. 웃어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은 차가운 숨 뿐 이다.
신고를 하고, 히무로는 그 자리를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 주변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자신의 표정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제대로, 기쁜 표정으로 보이고 있을까.
정신을 차릴 때 쯤, 구급차가 왔다. 표정은 송장처럼 굳어 무표정이되었다. 사이렌 소리가 왜앵 왜앵 신경을 찢어놓는 것 같다.
"카가미 타이가는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어."
그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항상 그의 죽음을 바랐다. 직접 죽인 것은 아니어도 그의 죽음에 한 몫,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죄책감일까. 그것은 아니다. 약간의 슬픔, 그리고 아쉬움. 아마 미련이라고 하는 것 일거다. 이 미련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을까.
"아마, 이 자리에 카가미 군이 있었더라면 히무로 씨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것은 히무로 씨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쿠로코가 그 말을 마친 순간 히무로는 카가미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히무로의 착각이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 것은 쿠로코였다. 그를 카가미로 착각하다니, 자신은 아직도 환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가. 카가미가 아직 자신의 곁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쿠로코는 본론을 이야기하겠다며 매고 온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아마도 카가미의 유품 정리를 도왔던 것 같다. 사고 당시 갖고 있었던 소지품 중에서 무언가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을 가져 왔겠지.
"히무로 씨에게 전할 게 있습니다. 카가미 군의 품안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피가 묻어서 거의 알아볼 순 없지만, 쿠로코가 건넨 것은 사진이었다. 히무로와 카가미가 함께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기분 나쁘게 이런 것을 왜 갖고 다녔던 것일까. 자세히 보니 히무로가 갖고 있는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히무로의 사진은 카가미의 얼굴이 비어있고, 대조적으로 카가미가 갖고 있는 사진은 핏자국으로 히무로의 얼굴만이 가려져있었다. 두 장의 더러워진 사진이 어딘가 병들어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가미 군은 단 한 번도 히무로 씨를 얕잡아보거나, 미워한 적이 없었어요."
그 정도쯤은 알고 있다. 카가미는 그를 좋아해 주었고 존경했다. 진심으로.
오직 히무로, 그 혼자서만 그 애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이다. 히무로에게 카가미는 미칠 듯이 증오스러웠던 동시에, 소중한 동생이었다. 모순적이다. 모든 미련의 근원인 모순이었다. 그의 모든 것이 부러워 질투하고 증오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결국 다시 이 사람에게 끌리고 있었다.
"히무로 씨,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쿠로코가 히무로에게 손을 내밀어 한 가지 물건을 더 쥐어주었다. 주먹을 꽉 쥐어도, 쥐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아져 버린 그것은 피 묻은 싸구려 은반지였다. 이제는 손가락에 들어가지도 않아 아무런 쓸모가 없는 반지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 일까. 일단 받아들고 나니 그때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그 은반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은반지를 아직도 목에 걸고 있었다는 것을.
쿠로코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다시 한 번만 카가미 군을 만나고 와 주세요."




다음날, 히무로는 교외에 있는 작은 납골당으로 갔다. 어울리지 않게 흰 국화꽃도 몇 송이 사들고 갔다. 그 안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두개 들어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흉물스러운 사진들이다.
카가미가 죽었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카가미는 죽었다. 다시는 그의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나타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고, 상관이 없다는 것은 이제 그에게 있어서 아무런 존재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이 미련은 무엇인가. 눈엣가시 같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의 생각 속에 가시처럼 박혀 스칠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이 드디어 없어졌는데. 누가 죽고 누가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저기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을 카가미의 뼛가루가 마치 그 자신인 것 같다.
이번에도 히무로는 그에게 져버렸다. 이긴 적이라곤 한 번도 없다. 결국 그는 그가 가장 싫어했던 카가미 타이가가 없어졌어도 그에게 남은 미련 때문에 아마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패자의 인생이다.
"미안…, 미안해요…, 미안해…."
아무도 없는 납골당에 우뚝 서 있던 히무로가 무너져 내린다. 그는 원래부터 무너지기 쉬운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힘겹게 지키고 있었던 것뿐이다. 모래성과 다를 것이 없다. 만들고 지키는 것은 힘들지만 결국에는 부서지기 쉬운 모래일 뿐이다. 히무로는 소리 없이 울었다. 품에 있는 국화 꽃다발을 안고 울었다. 희디 흰 국화 꽃잎에는 물인지 눈물인지. 물방울이 하나 맺혀있다.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뼛가루에게 히무로가 망연히 속삭인다.
"너도 조금은 나를 원망해도 좋아. 타이가."



by 윤라크 2014. 8. 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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