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무 생각 없이 써 내려간 편지의 첫 문장은 언제나 처럼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츠시, 안녕. 오랜만도 아니지만.
요즘과 같은 세상에 이렇게 손편지를 쓰는 것은 비교적 생소한 일이다. 바로 그만해도, 우편함에 도착하는 것은 손편지가 아니라 휴대전화 요금이나 관리비 청구서 같은 무엇인가 나에게 요구를 하는 종이들이 전부니까.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딱딱한 자판만 만지다가, 이렇게 펜을 쥐게 되니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메일이나 문자보다는 이렇게 펜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이것은 보내기 위한 용도가 아닌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만약에 이것을 보내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까 말한 청구서 더미에 섞여 버려질 것 같았다. 무라사키바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러가 아니라 실수라고 해도. 일단 편지나 문자를 보내게 되면 그 답장을 기다리게 되니까. 그런 가망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문장을 적고, 소리내어 아츠시, 하고 불러보았다. 얼마만에 불러보는 이름일까. 자신 목소리인데도 그것이 꽤 어색했다. 의외로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학교에 나가지 않은 주말 며칠이 고작이다. 끔찍이 긴 시간동안 그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츠시에 대한 시간은, 언제나 그것의 몇 배로 느껴지곤 했다. 즐거운 시간도, 괴로운 시간도. 몇 배 씩. 언제나 느릿느릿한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서 인 것일까.
정리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아츠시에 대한 감정이었다.
분명히, 그 한 학년 후배에 대한 그의 감정은 좋아한다, 라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정리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접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불을 개듯이 반듯반듯하게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지. 무작정 그의 앞에 다가가 좋아합니다! 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일이니까. 본인에게도 그것은 약간 힘든일이다. 이상하게 연애에 관련된 문제가 되면 소녀가 되어버리는 히무로 타츠야였다.
일단은 좋아합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런 내용을 적어버리면 이 편지는 연애 편지가 되어버리는 거잖아. 그런 편지를 받는다면, 아니 안보낼 거지만, 무라사키바라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바보같다고 하며 비웃을까. 아니면 이 편지의 의미도 알지 못할까. 설마 그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종이를 먹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염소도 아니고 그럴일은 없겠지. 정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무라사키바라에 대한 연심의 시작은 뻔한 연애소설의 줄거리 답게 첫눈에 반한 것이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히무로는 생각했다. 아, 세상에 천사라는게 있긴 있었구나. 분명 그때는 그랬다.
농구부에서 활동을 하고 난 후에는, 그 환상이 깨졌다. 이녀석은 악마다. 악마임이 틀림없었다. 재능이 없으면 그만두라니, 지옥에 떨어져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죄인의 기분이 이랬을까. 재능없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저런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된 마음도 있었다. 그렇지만, 무라사키바라는 히무로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더블에이스라고 인정까지 받은 몸이라 봐주고 있었던 것일까.
"무로칭은 말이지,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단 말이지."
항상 어린아이같은 행동을하는 후배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라사키바라 쪽이 오히려 더 손이 많이가는 어린아이다. 그런 후배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히무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알수 없는 기쁨도 생겼다.
"역시 아츠시도 나를 신경 써 주고 있었구나! 이건 역시 운명의 destiny! 라는 걸까! That's awesome!"
"... 무로칭은 미국에서 살다 왔는데 영어가 수상하단 말이야..."
이런 느낌으로 관계를 이어오던 것이 근 수개월간이었다. 그렇게 이어져 오던 관계를 먼저 기우뚱하게 해버린 것은 무라사키바라였다. 히무로에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무로칭, 혹시 나 좋아해?"
시기적으로는, 아마 윈터컵이 끝나고 난 뒤, 아직까지 그에게 무라사키바라에대한 연심이 확실하지 않을 때의 일이다. 히무로의 무라사키바라에 대한 연심은, 그말을 기점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때는 극구 부인했다. 평소에 잘 쓰려하지 않는 제스쳐까지 내 보이며.
"그럼 뭐, 그런거고."
무라사키바라는 그렇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다. 방과 후에는 그에게 과자 한봉지를 얻어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말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은 히무로 하나 뿐이었다. 무라사키바라가 그에게 그런말을 한 그 순간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결과는 현재, 이렇게 연애편지 아닌 연애편지를 적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남자 녀석이 답지않게 종이 한 장 붙잡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여러번 고개를 저으며, 그만두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손이 멈추질 않았다. 마음이 복잡한 탓이다. 어쩔 수가 없다. 편지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자신이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요즘 안부. 과자는 잘 먹고 있냐. 편의점에 새 과자가 나왔다더라. 비싼데 가끔은 네가 사먹어라. 의미도 알 수 없고 두서도 없는 이야기였다. 왜 이런 휴지 조각을 생산해 냈는지 모르겠다. 후회의 감정에, 뜻 모를 눈물까지 난다. 졸지에 이 종이는 쓸데없는 내용의 눈물 젖은 편지가 되어버렸다. 보여주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이런 그냥 말로 해도 되는 것을 글로 쓴 것에 대해 무라사키바라는 비웃거나, 무시하거나, 바보 취급을 하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이 편지는 몸에 지니고 다니자. 액땜이 부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 히무로는, 오전부터 무라사키바라와 마주치게 되었다. 무라사키바라는 히무로를 보자마자, 말을 걸었다.
"무로칭."
"어어어어어어어어??? 무슨 일이야 아츠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무라사키바라는 그런 히무로를 보고, 무로칭 이상하네. 라고 한마디 한뒤, 본론을 이야기 했다.
"학교 끝나고 케이크 뷔페가자."
겨우 그것뿐이었다.
"아, 난 또 뭐라고."
히무로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야, 이런 편지에 대해서 무라사키바라가 알 리도 없고, 안다 해도 그렇게 찔릴만한 일은 아니니까. 좋아한다라는 마음을 고백할 마음이 없다면, 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일단은 고백하기에 필요한 용기도 없고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고백을 할 때 당연히 드는 고민, 상대방이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한 몫했다.
"대체 뭘 생각한거야. 어쨌든 약속한 거니까. 꼭 나와. 무로칭 오늘 청소 해야했던가. 그럼 역 앞에서 기다릴게."
왠지 모르게 히무로의 일정을 궤뚫고 있는 무라사키바라였다.
불안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히무로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오늘은 부 활동이 없는 날 이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아마, 수업이 끝나자마자 역 앞으로 가 히무로를 기다리겠지. 그렇다면 히무로는 그를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맡은 일을 다 마치고, 역으로 가는 것이 맞는 일 이다. 역으로 가면 그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늦었다며 불평을 쏟아놓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무라사키바라를 달래며, 케이크 뷔페에 가는 것이다. 음, 좋아. 완벽해. 완벽한 일상의 한 페이지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렇게 상상대로만 풀릴리가 없는 일이었다.
원래는 이런 내용을 쓰려 했던게 아닌데
그냥 개그